마사지의 어원
‘마사지(massage)’라는 용어의 어원은 ‘두드리다, 어루만지다’라는 뜻의 아랍어 massa, ‘손’이라는 뜻의 라틴어 manus, ‘주무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massin 등에서 유래하였다. 오늘날의 마사지라는 용어는 치료와 운동수행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지압 • 안마 등의 수기요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프랑스어의 masser에서 유래되었는데, 2세기 전 중국의 한방의학 서적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The Cong-Fou of the Tao-Tse』라는 책을 출판할 때 사용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마사지 용어는 쓰다듬기: effleurage (경찰), 주무르기: petrissage (유념), 두드리기: tapotement(고타), 비벼문지르기: friction(강찰), 흔기: vibration (진동) 등이다.
마사지의 역사
1) 고대 중국
고대 중국의 의학서적은 공중위생과 건강증진을 포함한 일반적 치료법뿐만 아니라, 체조 • 식이요법 • 마사지 • 수치료 • 태양열(일광욕)치료 등을 망라한 문헌적 유산이다. 약 2천년 이전에 쓰여졌다고 하는 문헌에서는 “인체는 두려움의 작용 하에 신경과 혈관에 마개가 씌워졌으며, 그로 인해 신체는 마비되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마사지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라고 쓰여져 있다.
동양의 안마법은 일종의 심신단련법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것은 “대기를 이끌어 체내에 끌어넣어 깊이 호흡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욕망을 다스린다”는 것을 주안점으로 하는 것이다. 자강술(좌공법)은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고 신체를 단련해 심신을 명랑하게 하여 불로장수의 선경에 도달하기 위한 호흡운동법이다.
고대 중국의 의사 화타는 근육과 뼈를 움직여 관절을 움직이는 기술, 즉 오금의 기술과 오래 전부터 도인들이 하던 허리를 쭉 뻗어 여러 관절을 움직이기 등에 의해 불로장수를 기원했다. 특히 오금의 기술은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의 움직임에 맞추어 질병을 제거하고 족압을 이용해 도인하는 것이다.
몸상태에 변화가 있으면 일어서서 하나의 짐승모습을 흉내내 땀을 내고, 끝난 다음에 물을 끼얹으면 신체가 가볍게 되고 금방 식욕이 난다. 매일 이것을 반복하면 90세를 넘어서도 귀 • 눈이 노화되지 않고, 이빨이 견고하다고 하였다. 5종의 짐승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의 행위를 흉내내어 자동운동을 하여 순환기능을 향상시키고 호흡운동을 활발히 하면 신진대사가 왕성해진다.
2) 고대 인도
고대 인도는 역사연구의 전범이 되고 있는 「Code of Manu』(마누법전)과 기원전 9세기부터 3세기까지 만들어진 『아유루벳트비문』(BC900~300)에는 “150명 이상의 급성질환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과 치료체조, 마사지방법 특히 경찰법 • 압박법 • 고타법이 묘사되어 있다.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갠지스강의 점토가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강의 서안에 있는 절에서 치료가 행하여 졌는데, 그 과정에서 마사지도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3) 고대 이집트
이집트는 인도, 중국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상지로서 세계문화사에 공헌하고 있으며, 의술은 약 4000년 전부터 생겨났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지식의 전형적 근거는 피라미드와 석관, 건조물의 비문, 파피루수 종이에 쓰여진 상형문자의 귀중한 문장 등이다. 여기에는 이집트인이 걸린 많은 병과치료법이 기술되어 있다. 당시의 이집트인은 복잡한 약을 이용했을 뿐만아니라, 수치료와 마사지도 병행했다. 1841년 이집트 군장의 석관에서 나온 파피루스 종이에는 발에 시술하던 경찰법이 기술되어 있다.
4)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 유명한 것은 욕장에서 신체에 기름과 도포체를 바르고 마사지하는 그림이다. 이집트로부터 고대문화를 꽃피운 헤라스(고대 그리스의 국명)에 입국한 시인 호머는 “치루체야가 욕탕에서 오디세이아의 신체에 기름과 도포제를 바르고…” 하고 당시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욕장이 신체트레이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의사 헤로디고, 히포크라테스, 데모크리토스 등은 ‘건전한 정신과 건전한 신체에 대하여’ 말하고, 마사지를 스포츠에 이용하는 생리적 의의를 강조하였다. 또, 히포크라테스와 그리스교도들은 “특히 의사는 마사지에 관한 많은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5) 고대 로마
고대 로마의 마사지는 그리스 국적을 가진 의사 아스구레피아토(기원전 2세기 말부터 1세기)가 음식에 관련된 문제와 유념법 • 경찰법을 권장하였다. 또, 로마의 작가 프소니는 건조 마사지, 기름을 이용한 마사지, 단 • 장기간 마사지 등을 권하였고, 특히 진동법을 이용했다.
한편 서기 1세기 전반 페루가무 검투사 학교의 쿠라후디 카렌(서기 131~201년)은 로마의 마사지를 9종류로 나누었다. 한편, 후기의 그리스인들과 같이 로마인들도 마사지를 자국의 체육적 체계와 군대 안에 넣고 있었다. 플루타크는 2세기경 그리스의 걸출했던 정치가와 군인들 생애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노예가 마사지에 이용되어졌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6) 중세전기
중세 전기에는 아랍인들에 의해 마사지가 계속되었지만, 중세에는 교회 이데올로기의 압제로 마사지는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불로장수와 연금술 때문에 마사지를 잊어버리고, 단지 민속기술을 전수받은 일부의 아랍인들만이 마사지를 지켰다. 유명한 타지크민족의 이븐시나는 의술에 어떤 종류의 마사지를 채용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 후 아라비아인의 침입과 함께 회교도와 결부되어 폭넓게 행하여져 동방으로 보급되었다. 이어서 아라비아에 인접한 나라들에서 토루코, 페르시아, 히바(중앙 아시아)로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위대한 시인 A. S. 푸시킨은 1829년에 발표한 『코 없는 타타루인』에서 마사지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 1880년 쓰여진 러시아의 고문서에는 그루지아, 아루메니아의 스포츠맨이 동방식 마사지에 의해 성과를 거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슬라브족 중에는 가벼운 물건으로 자극을 주는 고대 슬라브식 마사지가 행하여졌다. 이것은 현대에도 남아 있고, 오늘날 러시아,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등에서 널리 행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고대인들의 마사지 습관**
고대 그리스에서는 완벽한 육체를 추구하였으며, 그것에 모든 주의가 집중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건강유지를 도모하기 위하여 냉수욕을 하거나, 고약을 문질러 바르고 마사지(마찰)하는 등의 일정을 반복하고, 매일의 습관을 꽃병이나 그것과 닮은 물건에 아름다운 그림 • 조각 • 문양 등으로 표현했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병으로 아파하고 있다면 어떻게 달래겠는가. 당신은 반드시 신과 같이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머리나 신체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그것은 마사지로 진정시키는 원리와 같다.
이렇게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마사지의 도움에 의지하기도 하고, 때때로 스스로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인류는 진보를 거듭하여 과학적 기초하에 확실하게 근거가 있는 법칙을 적용해 완성된 종합적 치료방법 등을 익히게 되었다.
7) 봉건시대부터 근대까지
봉건제도 해체기 문화의 일반적 경향인 자본주의체제의 발생, 르네상스기의 진보적 운동, 과학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 쇠퇴, 자연을 정복하는 물질세계의 관심 등은 치료철학과 마사지 영역의 진보를 촉진했다. 18세기 마사지의 권위자 호프만은 많은 조기죽음과 질병예방에 대한 『근본적 방법』이란 9권의 저작 중에서 태고의 마사지인 강찰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의 외과의사인 안드레는 전생애를 걸고 치료체조와 마사지를 외과에 도입했다. 1750년 플레르는 체조와 마사지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스웨덴의 체조 창시자인 링 (1776~1839)은 체조와 마사지에 주의를 환기하고, 고대 그리스 • 로마 • 중국의 책을 통하여 폭넓게 연구했다. 링은 “인체기관의 조화적 발달을 도모하는 것은 청년과 국민을 교육하는 중심적 기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링은 세계 각국에서 행하여지던 마사지를 과학적으로 체계화시켰다.
한편 러시아의 학자 자브루도프스키는 독일에 망명하여 베를린대학에서 마사지강좌의 주임교수가 되어 마사지의 생리학적 기초가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처음으로 『마사지가 건강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라는 학위논문을 썼다. 또 A. I.보루로와는 고주파전류요법(1901년)을 발명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전시상해의 치료목적으로 마사지가 많이 보급되었다.
오늘날 마사지는 육체적 완성의 촉진과 운동수행능력의 향상, 스포츠상해의 치료, 스포츠맨의 피로극복 등에 관한 중심과제가 되어 세계 각국으로 보급되어 응용되고 있다.
8)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안마법은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들어온 한방의술의 한 분과로 볼 수 있다. 고대의 마사지에 의한 생체의 작용기전은 순환기능장애의쾌복설에 의하여 순환계통의 기능을 증진시키며, 또 일련의 관련통학설, 피부내장반사, 압반사이론 등에 근거하여 신경과 근육의 기능을 원활히 한다고 하였다.
마사지도 안마도 오래된 전통에 의해 현대의 스트레스학설로 뒷받침 되는 것처럼 불안 • 심통 • 심화와 같은 내적 불안과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피로 • 권태 • 신경과민 • 두통 • 현기증 • 머리가 무거운 증상 • 어깨 결림 • 헛구역질 • 눈의 피로 • 변비 • 불면 • 식욕부진 등과, 내인성 만성질병 • 고혈압증 • 신경통 • 류마티스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것들의 종합효과로서 “마사지와 안마 등은 기계적(역학적) 자극에 의해 생체변조의 교정과 질병의 예방치유를 돕는 방법”이라는 정설이 나오게 되었다.
마사지 시술의 목적은 전신기능을 호전시키기 위하여 신체의 반사와 교정기술을 활용해서 신체기능의 조정을 꾀하는 것이다. 신체표면을 쓰다듬는다, 주무른다, 가볍게 문지른다, 누른다, 두드린다 등의 기술을 이용해서 생명보전에 불가결한 가슴안과 배안에 있는 심장 • 허파 • 이자 • 콩팥 등의 엄지와 형태를 바로 잡아주고, 척추뼈• 각 관절• 척수신경과 자율신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마사지에 대한 문헌은 세종 27년(1445) 10월에 편찬 완성되어 성종 8년(1477)에 발간된 『의방유취(醫方類聚)』 205권 양생도인법(養生導引法) 조(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에 의하면 1442년에 세종대왕이 바라문안마법(婆羅門按摩法)이 어떤 방식의 체조이며, 어떤 효과를 지닌 안마술인가를 연구하기 위하여 신하들에게 자료를 수집• 편찬하도록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사지가 천축국(인도)의 안마법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 비슷한 여러 가지 마사지동작과 체조동작 등 18가지의 운동으로 구성된 이 안마법은 위가 신체건강의 기본이라는 생각에서 위 부위의 자극촉진운동을 중요시했으며, 골격• 관절• 피부 등의 안마로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안마와 체조를 의료적 건강법으로 시술한 바라문안마법은 전국민에게 보급되지는 못하였으며, 주로 학자나 고위층에 국한되었다. 즉 항상 실내에서 앉아서 생활함으로써 신체활동이 고정화되기 쉬운 사대부들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의방유취 이외의 마사지에 관한 문헌으로는 이황(李愰. 1501~1570) 집필한 『활인심방』이 있다. 이 책에서 도인법은 고대 중국의 의료체조에 관한 문헌을 참고했음이 나타나고 있는데, 활인심방과 도인법의 동작도해는 중국의 팔단금 운동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참조: 마사지란 무엇인가?